갈멜산 사건과 야훼의 재단

우리가 갈멜산 사건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A. 알트가 가르쳐준 대로, 얼핏보기에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사건 곧 야훼의 제단 하나가 파괴되었다는 언급 (30절) 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갈멜산은 옛 부족동맹이 이주해 들어왔던 지역 밖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제단은 다윗 시대 이후에야 비로소 세워진 것일 수도 있다. 다시말해 갈멜산 위에 있던 이 야훼제의는 침입, 곧 가나안지역을 향해 있는 일종의 전진기지였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갈멜산은 고대부터 갈멜의 바알을 숭배하는 제의장소였기 때문이다. 야훼신앙이 언제 어떻게 이 지역에 스며들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마 처음에는 야훼신앙이 바알신앙을 간단하게 밀어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이 토착신앙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섰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이 자주 겪어야만 했던 일이기도 하다. 곧 제단 두 개가 나란히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야훼의 제단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엘리야가 이 곳에서 처해있던 상황이었다. 만일에 우리가 위에서 이 공존, 아니 이 내적혼합 현상이 엘리야에게는 참을 수 없는 현상이었던 반면에, 당대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점이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이야기꾼은 예언자가 제기하였던 물음에 대답을 주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끌어나가고 있다. 누가 대답하고 있는가? 백성들은 절대 아니다 (여호수아 24:14 이하에 나오는 비숫한 이야기와 비교해 봐도 이 이야기는 나름대로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엘리야도 물론 아니고. 야훼 자신이 그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꾼이 지녔던 아주 중요한 의도는 이스라엘은 오직 이렇게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만일에 야훼께서 큰 영광 중에 자기 스스로를 새롭게 드러내시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앙적 냉담상태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였다. 이로써 이스라엘에서 누가 하느님인가라는 아주 커다란 물음에 대답이 주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기껍고도 인간적인 그 어떤 신앙고백 보다도 더욱 놀랍고 결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작은 지역 한 군데서 일어난 사건을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확대시키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사건 전체를 처음부터 결코 일치될 수 없는 제의행위 두 가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과 제의행위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을 출발점으로 하였다는 것을 단점으로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엘리야의 시각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로써 서로 융화할 수 없는 제의행위 두 가지를 아주 전형화시켜, 서로 대치시킬 수 있게 되었다. 바알제의는 과도해지다가 결국 자기붕괴에 이르고 말았다. 여기서는 업적을 통해 신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가망성 없는 시도와 엘리야의 방관자적인 태도가 비교되고 있다. 곧 미친듯이 열광하는 바알 사제들의 노력에 비해, 그의 태도는 수동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스스로 증거하시리라는 데 그만큼 자신만만하였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찾아 나서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찾으려고도, 끌어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만일에 이 이야기가 교훈의 기준을 뒤흔드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는 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아주 오래된 기적신앙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특히, 이야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엘리야와 결부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태고세계 (太古世界)의 묵직함과 현기증을일으키는 예언자적 자기의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바알 예언자들을 죽인 것은 엘리야가 열정에 사로 잡혀서 행한 보복행위거나 광신행위가 결코 아니었다. 엘리야는 다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옛 부족동맹시절의 법을 실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은 정당한 것이다. 이 법에는 야훼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행위를 사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2:19).” 엘리야보다 200년 후에 만들어진 신명기도 이 규칙에 든든히 서 있는 것이다 (신 13:7-12). 그에 따르면 어떤 시 전체가 야훼제의를 거부할 가능성까지 계산에 넣고 있는 데, 이런 경우에는 아주 극단적인 형벌, 곧 모든 생명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추방” (Bannung)으로 다스렸다 (신 13:13이하).

이에 뒤따르는 이야기, 곧 호렙산에서의 계시 (왕상 19장) 는 카르멜산 사화 (Karmelgeschichte)에 곧바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아주 극적인 인물이 전면에 나타난다. 그는 카르멜산에 일어난 야훼의 자기계시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으며, 아니 그 반대로 오히려 비장한 결심을 하는 인물인데 곧 왕비 이세벨이다. 그러나 본래 이 이야기가 독립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어떤 측면에서는 이것이 그 전의 것과 병행된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야훼제의가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며 (10절), 또한 야훼의 계시를 보도하고 있고, 물론 실행되지는 않고 예고되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심판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내다보고 있는 야훼신앙의 종말, 이것이 진실로 그가 절망하는 이유인 것이다. 예언자가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나약해지고 체념상태가 된 것, 이것은 이야기꾼 당시에도 아주 대담하고 또 자극적인 폭로가 아닐 수 없다. 진실로 여기에는 나약성이 극단적이고, 표본적인 모습으로 나와 있다. 무슨 까닭이 있길래 하나님의 입과 하나님의 팔 밖에는 다른 아무 것도 의지할 줄 몰랐던 예언자가 이다지도 나약해 질 수 있단 말인가!

야훼가 나타나심 (顯現) 에 관한 기록은 틀림없이 가필 (加筆) 된 것이다. 그렇지만 본문의 현재모습으로도 이것은 사실적인 묘사를 통하여 아주 고대풍의 성격을 보존하고 있다. 그 의미는 어느 정도 분명해 진 듯 하다. 상황이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머물지 말고 해석학적인 물음을 더 제기해야 할 것이다. 곧 도대체 여기서 텍스트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가,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열의에 어느 정도에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생각, 곧 “조용하고 잔잔한 소리” 를 하느님상의 순화된 표현, 다시말해 보다 영적이고 윤리적인 하느님상으로 보는 견해, 그래서 엘리야와 그의 정열을 부정하는 것은 거부되어야 한다. 이런 견해는 엘리야가 받은 사명, 그렇듯 부드러운 정신성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사명과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구약성서적인 신현현 현상에서 모든 것은 거기에 따라 오는 말에 달려 있다. 신현현에 동반되는 현상들은, 만일 이야기꾼들이 해석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장식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현현에 함께 딸려오는 상황에 대한 그런 묘사가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을 지닌 것으로 풀어내야 할 지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