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치마저고리의 미학

인민대학습당, 옥류관 등에서 보듯 이름난 건물들은 모두 우리식의 양식을 보여 준다. 개선문도 그런 건축물의 하나다. 개선문이라 하면 흔히 파리의 나폴레옹 개선문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북의 그것은 건축양식부터 조선식의 건축양식이다. 건물 전체가 이 땅의 화강암으로 지어졌고 까마득한 높이에다 전통의 서까래와 공포 양식을 더하고 있다.

깃든 의미는 더욱 새롭다. 관광지마다 만나는 치마저고리의 아리따운 해설자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자. 개선문은 김일성 주석이 1025년에 만경대 생가를 떠나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들어온 걸 기념하는 것이란다. 개선문 양쪽에 년도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니까 1925년은 14세를, 1945년은 34세를 뜻하는 셈이다. 그 사이 20여년 세월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 개인에게는 소년기와 청년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쪽같은 오랜 시간일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만주 일대 유격대의 피어린 항일투쟁이며 전투기까지 동원된 50만 일제 침략군에 맞서 마침내 우리 민족 자력으로 조국해방을 가져온 승리의 항일투쟁이다. 소년기에서 청년기까지의 대부분을 항일무장투쟁에 바쳤다는 얘기다.

그런 걸 전부 가짜는 아니나 과장이라 할 수 있을까. 그 대강을 보도해주는 식민지 시절의 신문들이 남쪽 도서관들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남쪽의 출판사에서 나온 역사책에도 대강의 내용은 나온다. 이를 테면 1932년에서 1938년까지 7년 동안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대에 동원된 항일무장유격대원 총수는 약 이백 만 명에 이르고 있다. 출몰 횟수는 3만 4천 건이 넘는다. 항일무장투쟁의 줄기찬 치열성이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직간접 전투가 치루어졌던 셈이다.

이런 사실은 가짜설과는 서로 하늘과 땅 차이에 해당될 것이요 가짜는 아니나 조금 완전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던 사연까지를 그런 데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해방의 주체라 하면 곧잘 연합군이나 상해임정 정도를 떠올리는 남녘 관고아객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객관적 근거에 대한 더욱 정확한 해명은 훗날을 기다리기로 하자. 바보라 했다가 바보로 몰릴 수도 있는 어두운 분열의 세태는 여전하지 않는가.

좀 과장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평양과 파리 개선문의 속내는 서로 정반대가 되어 버린다. 한 쪽은 침략자를 자력으로 물리친 조국해방의 성전기념물이거나 세계평화를 사수한 승전기념물이고, 나폴레옹이나 로마의 그것은 야만스런 침략전쟁의 그것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파리 개선문은 사실상 흉물이 아니던가. 자유, 평등, 박애의 역사적 성지를 자처하는 프랑스와 서양적 민주주의며 애국주의가 우스꽝스러워질 수가 있다. 석유를 노려 이라크를 살육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무엇이며 그에 호응하여 동맹군을 파병하고 테러를 두려워해야 하는 동방예의지국은 또 무엇일까.

저녁 일곱 시 능라도 5.1경기장엘 들어섰다. 5.1은 국제노동절을 뜻한다. 이곳은 1989년 여름날 남과 북을 서로 대조적인 의미로 달구었던 남녘 임수경 학생이 참여한 세계청년학생축제가 열렸던 행사장이란다. 들어가는 입구 저 안으로 언뜻 비치는 경기장 맞은 편의 관람석의 거리가 저만치 아득해 보인다. 15만 명을 수용하는 시설이니 만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장 덮개의 모양새는 숱한 낙하산 모양을 이루고 있다. 관람석에서 우리 일행들은 약 10분 정도를 그냥 서서 손뼉을 쳐야 했다. 미리 입장한 평양시민들의 환영 박수 소리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랑 예술공연은 맞은 편 관람석의 카드섹션 배경대와 운동장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다. 놀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공연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공연 참여인원이 약 10만 명이란다. 세상에 이런 공연도 있단 말인가. 상상 밖이다. 전체 공연단의 움직임도 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공연은 서정적인 아리랑의 선율과 독창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수만 배경대의 카드섹션은 웅장하고 화려한 그림들을 자유자제로 그려댄다. 조국산하를 소재로 한 풍경화를 중심으로 일상생활과 정치생활까지 형상화되고 있다. 웅장하고도 서정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낭만적이면서도 정치적이다. 전체적으로 우리 민족사의 굴곡과 영광을 기본 주제로 설정하고서 중간중간 섬세하고 재미있는 내용도 끼어든다. 유치원생이나 초등생의 귀엽고도 정확한 율동은 많은 박수를 받는다.

이 화려하고 거대한 풍경화의 율동, 소리 또 교예와 레이저빛에 훌리거나 박장대소하다 보면 갑자기 인민군대의 군사행진이 진행된다. 온 경기장이 한 순간 조용해진다. 그런 가운데 북녘의 가공할 단결력과 삼엄하고 낙관적인 기백이 일사분란한 동작이며 우뢰같은 기합 소리로 내뿜어진다. 옆 안내원 선생에게 조용히 물어 보았다. 저들이 군인들이냐고. 하지만 학생들이란다. 짐작컨대 공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일 것이다. 학생들의 군사적 행동이 저런 수준이다. 관람석 배경대에 순간 큼지막한 구호가 새겨진다. 우리를 당할 자 아무도 없다. 핵무기보다 더한 위력은 저런 걸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민족자주와 민족적 사회주의를 향한 까마득한 높이의 정신무장과 조직력. 그렇다면 비록 극한의 경제봉쇄, 고립과 궁핍으로 몰아세우더라도 난공불락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공연을 속속들이 구경할 수는 없다. 생각해보라. 사람의 눈은 두 개인데 공연은 10만명의 그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 번은 보아야 제대로 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