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원인과 결과 삼계

당연히 이 고통의 원인은 삼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삼계에 되돌아왔는가? 이 사카야(구체적으로 말하면 육체라 할 수 있음)는 나에게 세계를 만들어 주고 ‘느낌’을 준다. 나는 이 사카야를 통해서 보고 듣고 맛보고 있다. 이 감각을 통해서 이 세계에 대한 좋은 느낌을 받는다. 즉 고통의 원인은 사카야를 통해서 얻게 되는 이 감각적인 쾌락이며 이것에 중독되었을 경우, 즉 느낌에 대한 갈증(집착)때문에 다시 이 삼계의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원하는 사카야의 씨앗을 잡지는 못한다. 어떤 사카야의 씨앗을 잡을 지는 그의 카르마가 결정한다. 내 자신이 바로 내 행위의 조절자이고 나는 그 행위의 유산인 것이다. 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3) 고통의 소멸
고통의 실상과 원인이 그러하다면 진정 고통은 지속될 수 밖에 없는가? 아니다. 고통이 소멸된 곳이 있다. 바로 니르바나,,,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해탈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를 고타마는 명상속에서 바라보았고 1981년 현대과학에서도 니르바나의 세계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4) 고통의 소멸 방법: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길
고타마 싣달타는 말한다. ” 앞으로 제시하는 여덟겹의 고위한 길을 따라 가거라 그것이 내가 고통의 세계를 벗어난 방법이니라.”

둘째, 바르게 생각한다. 무엇이 ‘바르게 생각한다’ 인가? 이것은 삶의 목적을 뜻한다. 삶의 목적, 즉 이번 생의 삶의 유일한 목적은 삼계에서 떠나는 것이다. 이 사카야(육체)를 잘 사용해서 다시는 삼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목적으로 삼아라. 깨어남, 깨달음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라. 이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이 삼계에 존재하는 한 무엇이 되든지 고통일 수 밖에 없다. 원래 고향인 니르바나의 세계로 돌아가라. 이기적이라고? 어차피 행복은 없다. 나의 행복도 없는데 남의 행복을 위해 내가 무슨일을 할 수 있다고? 남의 행복을 위한 어떤일이란 것은 스스로에 대한 기만일 뿐이다.

즉, 앞으로는 한 목적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내가 깨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일만하겠다는 생각, 이것이 바른 생각이다. 어떤 행위를 행함에 있어서 그 일이 내가 깨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인가?? 하고 짚어볼 일이다.

☆ 참고로 ‘깨어남’을 측정하는 법으로 측도, 즉 깨어남을 측정하는 자는 ‘미워하는 감정’이다. 상대방의 어떤 행위에 대한 ‘미워하는 감정’이 바로 나의 깨어남을 측정하는 것. 미움이 일어날 때마다 “아,,내가 이만큼 아직도 덜 깨어났구나!!” 하고 느끼는 것이다. 어렸을 적 과자 한 봉지에 울고 웃던 나는 이제 더 이상 과자봉지에 목숨 걸지 않듯,,,’미워하는 감정’이 사라져감이 내가 깨어남의 세계로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향한 분노를 삭혀서는 안된다. 미움없는 정의의 실현은 ‘정의’ 이고 미움있는 정의의 실현은 ‘보복’인고로…

고귀한 여덟겹의 길 세번째, 네번째, 다섯번째는 고타마의 ‘윤리’를 말한다. 이 사카야(육체)는 무엇인가? 이 사카야는 내가 깨어나는 도구이다. 나는 이 사카야를 통해서만이 깨어날 수 있는 것이다.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망원경을 잘 정비해야 하듯이 내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깨어남의 도구인 이 사카야를 잘 정비해야 하는데, 이 사카야를 정비하는 방법은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일하는’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셋째, 바르게 말한다. 무엇이 ‘바르게 말한다.’ 인가?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거짓말하지 마라.’를 뜻한다. 험담하는 말, 무시하는 말, 이간질하는 말, 불친절한 말, 잡담 등은 모두 ‘거짓말’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거짓말을 하지마라. 어떤것을 하고도 하지 않은척, 하지 않고도 한척하지 마라. 정직하라. 사카야가 깨어나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사카야를 정비하라.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그것은 두려움때문이다. 진실을 말한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짓을 말하게 되는데, 차라리 진실을 말하고, 얻어맞을 때의 달콤함을 느낄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 달콤함이 반복되면 강해진다. 진실을 말하고, 그 결과 얻어맞고, 차라리 강해져라.

거짓말을 하는 사카야는 의식의 오류을 범하고 있다. 들키면 돌아올 결과가 두려운 나머지 거짓말을 하고 이 거짓말이 고통을 줄어들게 할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오류이다. 냉엄한 카르마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가? 못된 짓을 하면 반드시 못된 열매를 맺는법이다. 암튼 무작정 거짓말을 하지마라. 하얀 거짓말조차도. 거짓말은 안하는 것이 최고이고 굳이 해야할 말이라면 칭찬까진 무방하다.

넷째, 바르게 행동한다. 무엇이 ‘바르게 행동한다.’인가? 이는 ‘도둑질 하지마라.’ 즉, 주지 않은 것은 갖지말라는 것을 뜻한다. 동서고금의 모든 가르침은 ‘거짓말하지 마라.’와 ‘도둑질 하지마라.’를 기본으로 삼아왔다. 헌데 왜? 그 수천년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거짓말과 도둑질이 난무하는가?

이유는 의식에 병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거짓말하고 도둑질 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고통에서 벗어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보를 제공(informed)해 주었으면 그 정보의 내용으로 전환 (transformed)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깨어남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