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와 서구 문학이론의 수용

어느 나라 문학이든 얼핏 보면 고립된 개별문학의 축적인 것 같지만 실은 이질적이거나 문화적 공통분모를 가진 다른 문화들과의 부단없는 교섭의 결과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 문학은 이러한 상호교섭의 과정을 통해서 근대문학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민족문학과 세계문학과 같은 동일자와 타자의 개념쌍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서구의 다양한 문예사조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들 사이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편으로는 서양적인 것을 그것이 단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수입하거나 그것에 맹목적으로 이끌리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문화적 예속에 철저한 자기 반성을 촉구함으로써 민족적인 것을 지키고 확립해 나가야 한다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사회적인 또는 문화적인 필연성도 없이 외국문학이나 서구의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나 외국의 사조라면 무조건 비판하고 거부하는 태도 모두를 지양하면서 올바른 수용을 통한 창조적 논의를 진행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다. 이점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서양문학이론의 수용이 많은 폐단을 빚어내고 있다고 해서 국문학과 외국문학의 관련을 고려하지 말고 국문학을 그 자체로만 연구해야 한다는 고립주의를 택할 필요는 없다. 고립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고립한다면 해롭다. 서양문학이론의 수용이 폐단을 빚어내는 것은 국문학과 서양문학의 관련을 정당하게 해명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문학과 외국문학의 관련을 정당하게 해명하는 방법을 찾아 국문학 연구를 대신하고 세계문학론의 새로운 전개에 적극 기여하는 것이 이제부터 할 일이다.1)

즉 서양문학이론의 수용이 필연적이라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올바른 수용의 방향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한국문학연구가 수용한 서구의 문학비평 조류 가운데 구조주의 수용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우리처럼 외국의 문예사조를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는 경우 한 시기를 풍미했던 사조나 이론은 시간이 지나면 그 이론적 관심이나 열기가 금방 식어버리거나 또 다른 사조로 대체되는 예들을 볼 수 있다. 빨리 받아들였던 만큼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주로 7․80년대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을 풍미했던 구조주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 비평계는 물론이고 전문적인 학술연구에서도 구조주의적 방법을 원용한 작업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우며 구조주의적 방법론은 보다 새로운 다른 방법론들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우리의 문화계를 강타하고 있는 일련의 사조들, 즉 후기구조주의, 탈구조주의, 해체구성 또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표현되는 일련의 지적 움직임들이 구조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받아들여짐으로써 오히려 일반독자들에게는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인지 한번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근원으로 되돌아가 애초의 문제의식을 되돌이켜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구조주의 방법론의 수용의 문제를 짚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구조주의의 수용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총체적으로 진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논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김현은 구조주의의 성과와 의미를 개괄하는 글에서 구조주의가 단순한 유행사조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학문적인 연구방법임이 밝혀진 것을 다행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장차 <문학분야를 포함하여,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이 구조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고 비판하였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흥미로운 과제>2)라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최현무는 한국문학연구가 수용한 서구의 문학비평 조류 가운데 가장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문학을 둘러싼 판도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문학적 구조주의와 기호론이라고 규정하면서 기호론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구조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짧은 기간의 모색임을 감안하면 이 특수한 문학접근방식이 국문학의 연구에 끼친 최근의 영향은 재삼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만큼 지대한 것이며, 왜 우리의 문화맥락에서 특정한 한 시기에 구조주의 혹은 기호론적 사고가 예외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발전할 수 있었는가 하는 현상에 대한 메타적 접근이 언젠가는 꼭 한번 이루어져야 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