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반트 신화와 유대교

레반트는 히브리, 카나안, 페니키아를 포함하는 중동의 한 지방을 일컫는 말이다.

히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다신교를 믿었는데, 그 영향은 일신교를 믿는 히브리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성서 곳곳에 다신교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가까웠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의 신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거나 다른 지역의 신을 수입하여 자신들의 신으로 삼기도 했다.

유대교(Judaism)
유일신(여호와)을 신봉하며 유대인을 신의 선민으로 자처하고 메시아의 지상천국을 믿는 유대인 종교.

유대교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를 이어받고 있다. 그 경전인”구약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고 모세의 인솔하에 이집트를 탈출하여 민족의 기초를 굳게 하고 다윗, 솔로몬 시대에 왕국으로서 번영하였다. 그러나 BC 722년 북이스라엘왕국이 아시리아에, BC 586년 유대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 멸망하여 국가로서의 독립을 잃었다. 바빌론유수 시대에 민족국가에서 유대교라는 교국민족(敎國民族)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졌고, BC 539년 이후 페르시아에 의해 유대 귀환이 허락되어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교단의 형성이 이루어졌다. 할례(割禮)를 행하고 안식일을 엄수하며 일정한 식사의 율법을 지키고 있다. 《구약성서》외에도 그 후 교훈과 율법을 모은 《탈무드》를 경전으로 하고 있다.

페니키아(Pheonicia)
고대 시리아의 연안 지방의 도시국가 연합체.

페니키아에서 나오던 심홍색의 천에서 페니키아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스스로 어떻게 불렀는지는 모른다. 주민들은 가나안의 유민들이었다.

BC 3000~BC 1200년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두 문명의 영향을 받아 비블로스(Byblos)·우가리트·알라리크·티로스(Tyre)·시돈(Sidon)·베리토스(Berytus) 등의 도시국가가 항도(港都)로서 성립하였고, BC 1,200의 대재해 이후 크레타가 붕괴하자 그 공백을 급속히 메꾸면서 급성장하여 BC 1,200∼BC 750년에는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였다.

티로스 시는 BC 10∼BC 9세기에 부흥하여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어 페니키아의 맹주가 되고 에스파냐까지 함대를 파견하였다. 튀니스에 식민지 카르타고가 건설된 후 시돈 시(市)가 대두하여 페니키아인의 식민지가 에스파냐·아프리카·시칠리아·코르시카 각지에 건설되었다.

BC 8세기에 아시리아에 정복되어 여러 도시는 독립을 잃고, 신바빌로니아·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BC 33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티로스를 파괴하여 페니키아는 최후까지 통일되지 못하였다. 알파벳의 원형을 그리스인에게 전하였으며, 청동제품· 삼목(杉木)· 염료 등을 수출하고, 노예 거래가 성하였다.

몰록이라는 신은 첫 소출(所出)을 자신의 몫으로 받았는데 사람의 아이들도 이에 해당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첫 아기를 바치는 풍속이 잔인하게 비쳐졌지만 그런 풍속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음을 성서에 나오는 흔적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페니키아어(Phoenician language)
북부 중앙 셈어의 가나안 하위어군에 속하는 언어.

판독 가능한 비문에 의하면 BC 11세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고대 페니키아를 중심으로 한 여러 주변 도시들과 페니키아의 식민지들에서 사용되었다. 그리스와 라틴의 고전문학 작품과 히브리어· 이집트어· 아카드어 문학작품들에서 페니키아어 낱말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페니키아어는 모음이 없는 22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나안
카나안은 성서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묘사되어 있지만 현재나 성서 당시에나 그리 비옥한 땅인것 같지 않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맨 처음 공략한 여리고(Jericho)는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도시의 하나로 손꼽을 정도로 오래된 도시였다. 도시가 생길 무렵에는 현재보다 사막화(沙漠化)가 덜 진행되었기 때문에 훨씬 비옥했을 것이다.

1929년 우가리트의 고대도시 라스 샴라에서 점토로 된 문자판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카나안에 관해 알려진 것이 《구약성서》에 나타난 단편적인 것 밖에 없었다. 이 점토판은 고대 카나안어의 설형문자로 새겨져 있었으며, 그 문자가 해독됨으로써 우가리트의 종교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인근 지역인 시리아의 아람인과 사해 동쪽의 나바테아인들의 신화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카나안이라는 이름은 염료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조개 이름에서 유래했다. 티레, 시돈, 비블로스 등 동부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고 있던 페니키아 인들은 자신을 카나안 인이라고 불렀다. 카르타고 식민지에 사는 자국민을 본국의 자국민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포에니라는 이름을 쓴 것은 로마 인들이다.

카나안의 신화는 풍요에 대한 관심과 풍년신의 소멸에 관한 주제가 특징을 이룬다. 초기부터 최고신 엘의 권위는 대단했던 것 같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많은 부분을 바알에게 이양했지만 최고의 권위는 여전히 엘에게 남겨져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카나안의 여신 아스타르테에서 모티프를 얻어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를 만들어 내었다.

히브리
히브리는 “강을 건너온 자”란 뜻으로 하나의 민족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사회적인 계급을 일컫는 말이었다.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올 때 묘사된 상황을 보더라도 그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집트에서 나와 카나안으로 이동하면서 아라비아의 제부족을 흡수하며 동일한 의식을 갖는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여러 나라의 신화를 흡수하고 아브라함 같은 족장들에 관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자 여로보암 1세가 반란을 일으켜 내란이 일어났다. 전쟁에서 패한 여로보암 1세는 10개 부족을 이끌고 북쪽으로 물러가 이스라엘(Isarael)을 세웠다. 이에 따라 히브리는 남북의 두 왕국으로 분열하였다. 승리한 유다(Judah)와 베냐민 두 부족은 수도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통일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던 르호보암은 유다의 첫 왕이 되었다.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 제국에게 정복당하여 멸망하고 주민은 뿔뿔히 흩어져 역사에서 사라졌다. 남쪽의 유다도 아시리아 통치하에 있다가 이집트의 지배를 받고, 마지막에는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았다. 이때 유다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느부갓네살은 이를 진압하고 기원전 586년 그 보복으로 예루살렘과 신전을 파괴하고 유다 사람들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가서 노예로 삼았다. 이것을 “바빌론의 유수”라 한다. 기원전 539년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정복되자 히브리인은 예루살렘으로 귀항을 허용받고 다시 신전과 도시를 재건하였다.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는 알렉산더의 승리와 함께 막을 내리고 셀레우키드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기원전 168 ∼ 142년 반란에 성공하여 독립국가 유대를 세웠으나 얼마 안 가서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후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은 다시 파괴되고 히브리인들은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2천년의 세월이 지난 1948년 이스라엘 공화국이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솔로몬 사후 왕국이 분열되고 차례로 외세에 의해 멸망하자 의기의식을 갖게 된 일단의 지식인 집단을 중심으로 성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신 야훼에 대한 믿음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에는 부족신이었다가 카나안으로 이주하면서 전쟁의 신으로 변하고 더 후대로 내려오면서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신으로 변했다.

히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다신교를 믿었는데, 그 영향은 일신교를 믿는 히브리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성서 곳곳에 다신교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가까웠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의 신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거나 다른 지역의 신을 수입하여 자신들의 신으로 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