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공동체주의 세상에서 여성과 남성

필자는 법과 제도적 장치 그리고 교육으로 사적 분야의 여성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자이고 급진적 분리주의 이론의 주창자가 아님을 이미 분명히 하였다. 전기 급진주의 이론을 비판하면서 여성의 신체 자체가 열등하다는 인식 내지 전통은 서양의 지적 풍토의 산물이었고, 한국의 전통사상에는 여성의 신체가 열등하다는 어떤 내용도 없으며, 비록 신체구조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가치면에서 동등하다고 밝힌 바 있다.1) 영혼은 고귀하고 육체는 보잘 것 없다는 이원론은 서양의 지적 전통이며2), 특히 중세 기독교 문화권에서 여성의 육체를 혐오(mysogynism)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러한 서양의 남성 우월주의적인 지적 풍토를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대입하여 여성의 몸이 천하다는 관점에서 몸에 대한 연구가 각광받고 있다. 심지어 男尊女卑라는 말은 여성의 신체 자체가 열등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孝經󰡕의 첫 장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 不敢毁傷이 孝之始也”라는 말은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감히 몸을 손상시키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육체는 창조주의 피조물이 아니라 자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신의 몸을 가지런히 하라는 것이다. 몸을 소중히 여기고 닦으라는 修身은 유학이 지향하는 도덕 군자가 되는 첫 번째 덕목이다. 몸이 천하다는 편향된 시각에서 출발하는 몸 연구는 그 방향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적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역사가 오랜, 그리고 제1차, 2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노동력이 부족할 때 일터에 나와서 일을 한 경험을 가진 구미의 여성들보다 한국 여성의 지위가 낮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구미의 몇몇 나라에서는 이미 할당제(quota system)가 여성고용이나, 의회 여성의원을 확보하는 데에 적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남녀고용 평등법은 1989년에 제정이 되었지만 미국은 1960년대 초에, 영국은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제정되었기에3) 공적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는 한국이 어림잡아 15년 내지 20여 년 뒤쳐져 있다고 하겠다. 현재 한국은 공무원 공채에서 20%의 여성인원을 확보하는 남녀고용 목표제가 실시중이고 2002년부터는 30%로 확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그러나 국영 기업체나 일반 사기업체까지 남녀고용 목표제가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고위 행정 관리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숫자는 구미의 여성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4)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공적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위한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과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 즉 중산층 중심의 자유주의 여성이론의 자유는 아직 한국에서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