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라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의 삼위일체론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다루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교회 내의 다양한 다툼이 있었다. 12세기의 신학적 논쟁들과 요아킴 피오레(Joachim von Fiore, +1202)가 베드로 롬바르도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공격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요아킴 피오레 스스로는 일종의 삼신론에 가깝운 생각을 드러냈다. 파리의 신학자 아말리치(Amalrich, +1205/1207)에게서 유래한 아말리치파는 일종의 범신론을 대표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본질이며 하느님의 유일성은 전체 우주에 퍼져있다고 주장하였고, 또한 하느님의 세 위격은 동일한 본질이거나 동일하게 영원하지 않고 순차적인 세계의 시대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카타리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 때문에 400명 이상의 주교들이 모여 제4차 라테란 공의회를 열게되었고 거기에서 하나의 신앙고백을 인정하였다. 아마도 이 신앙고백은 11차 톨레도 시노드의 신앙고백에 의존한 것으로서 신학적 논문에 가깝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신앙고백이 베드로 롬바르두스에게 특별한 권위를 인정한 점이다.

우리는 올곧은 마음으로 굳게 믿고 고백하는 바, 오직 한분의 참되고 영원하며 무한하고 변하지않으며 파악할 수 없고 전능하며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이 계시다: 아버지, 아들, 성령께서 계시는데, 세 위격 그러나 하나의 본체, 실체 그리고 아주 단순한 본성이다: 아버지는 발출되지 않고, 아들은 오직 아버지에게서 그리고 성령은 둘에게서 발출되었다: 시작이 없고 영속하며 끝이없이 아버지는 낳고 아들은 낳음을 받고 성령은 발출한다: 같은 본체와 같은 완전성을 지니고 동일하게 전능하고 영원한다. 모든 사물의 유일한 원천.

우리는 거룩한 공의회의 인준을 받아서 베드로 롬바르두스와 함께, 파악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본체는 유일하고 그 본체는 실제로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것을, 즉 세 위격이고 각자가 위격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는 오로지 삼위가 일체이지 사위(四位)일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세 위격은 파악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유일한 본체, 즉 최고의 유일한 실체, 본질, 신적인 본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 본체 홀로 모든 사물의 원천이다. 그 외에는 다른 원천이 없다. 그 본체는 낳거나 낳음을 받거나 발출되지 않는데, 그 본체는 낳는 아버지, 낳음을 받은 아들, 발출되는 성령이다. 이렇게 해서 위격들의 구분과 본성 안의 일치가 보존된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 다르다고 해도 아버지의 본질과 같은 본질을 아들과 성령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정통 가톨릭 신앙에 따라서 셋이 동일본질이라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아들의 증언이 말해주듯이 아버지는 영원으로부터 아들을 낳음으로써 아들에게 자신의 본체를 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것은 만유보다도 크다”(요한 10,29).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의 본체의 일부만 주고 일부는 자신에게 유보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본체는 아주 단일하기에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가 아들을 낳음으로써 자신의 본체를 (자신에게서 떼어)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마치 아버지가 본체를 아들에게 주고 자신은 본체를 갖고 있는 않은 것처럼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버지는 자신이 본체이기를 중지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아들이 출생을 통해서 아버지의 본질을 아무런 제한없이 받았다는 것,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본체를 지닌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므로 아버지 아들 그리고 두 분으로부터 발출하는 성령은 같은 본체이다.

그러나 믿는이들에게 (영원한) 진리이신 분이 아버지께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요한 17,22)고 기도할 때, 여기서 ‘하나’라는 말은 신앙인들에 대해서는 은총을 통한 사랑의 일치라는 의미로, 신적인 위격들에 대해서는 본성상의 일치와 동일성의 의미로 이해된다. 그래서 진리이신 분께서 다른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 합니다”(마태 5,48). 그분께서 이를 좀더 분명하게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의 하늘의 아버지께서 본성의 완전함을 통해서 완전하신 것같이 여러분은 은총의 완전성 안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완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주와 피조물에 대해서 비슷함에 대해서 얘기할 때 둘 사이에 존재하는 더 큰 차이를 포함하지 않고는 얘기할 수 없다(DS 800-806).

피렌체 공의회(1438-1445)는 1054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된 동방교회와의 일치협상 때문에 삼위일체에 관해서 언급하게 되었다. 라틴교회는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한다는 고백을 수용하기를 요구하였다. 야고버인들(451년 칼체돈 공의회 이후에 분리된 시리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대한 결정문은 (켄테베리의 안셀모에 크게 의존하여서) 짧은 문장으로 교부-스콜라 신학의 삼위일체론을 요약하였다. 여기에서 아우구스티노의 철저한 추종자 루스페의 풀젠시우스(Fulgentius von Ruspe, +532)가 인용된다.

우리 주님 구세주의 말씀에 근거해서 거룩한 로마 교회는 한분이신 참되고 전능하며 불변하고 영원한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신앙을 고백하고 선포한다: 아버지, 아들, 성령께서 본체에 있어 하나이고 위격에서 있어 셋임을 고백하고 선포한다.

아버지는 출생되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로 낳음을 받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이나 성령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나 성령이 아니다. 성령은 아버지나 아들이 아니다. 아버지는 오직 아버지이고 아들은 오직 아들이며 성령은 오직 성령이다. 오직 아버지만 자신의 실체로부터 아들을 낳았고, 오직 아들만 아버지 홀로에게서 낳음을 받았고, 오직 성령만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발출된다.

이 세 위격은 한 하느님이고 세 하느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 위격은 하나의 실체, 하나의 본질,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성, 하나의 무한함, 하나의 영원성을 지니고 그리고 관계들이 상대방에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그들 안에서) 하나이다.

‘이런 일치 때문에 아버지는 온전히 아들 안에, 온전히 성령 안에 계신다. 또 아들은 온전히 아버지 안에, 온전히 성령 안에 계신다. 그리고 성령은 온전히 아버지 안에, 온전히 아들 안에 계신다. 영원성에 있어서 누구든 다른 이보다 이르지 않고, 위대함에 있어서 누구도 다른 이를 초월하거나 혹은 힘에 있어서 능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근원을 취한 것은 영원하고 시작이 없으며,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된 것이 영원하고 시작이 없기 때문이다’(Fulgentius).

아버지는 아버지의 신원 혹은 아버지가 지닌 것은 다른 누구에게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으로서, 그는 다른 데에 근원을 두지 않는 근원이다. 아들의 신원 혹은 아들이 지닌 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는 근원에서 나온 근원이다. 성령의 신원 혹은 성령이 지닌 것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의 두 근원이 아니라 오직 한 근원이다. 그래서 아버지, 아들, 성령은 창조의 세 근원이 아니라 오직 한 근원이다(DS 1330-1331).

이 신앙고백으로서 서방교회에서는 교도권 차원의 공식적인 삼위일체 교리는 종결되었다. 스콜라 신학의 시대에 형성된 삼위일체론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즉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유일한 신적인 본체와 두 번의 발출을 통해서 형성된 하느님의 내적인 관계의 삼성(三性), 이 관계들의 고유성 혹은 특징, 이들 상호간의 내재(內在)와 “밖을 향한”(창조와 관련한) 공동의 작용에 대해서 주로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