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축소론의 본질

지난 6월11일 당시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이 스크린쿼터 축소조정 방침을 발표할 때 세 가지 단서조항을 달았다. 그 중 첫번째 것이 “스크린쿼터는 한-미 투자협정 등 대미협상과 무관하게 주체적 판단에 따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크린쿼터 축소론이 나온게 한-미 투자협정 때문인데, 이와 무관하게 논의하자니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미국이 양국간 투자협정(BIT)을 체결할 때 제시하는 협정서 제6조는 ‘자국 상품·서비스 사용 의무 부과’를 금하도록 하고 있는데, 스크린쿼터가 여기에 걸린다. 지난해 7월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한-미 투자협정 관련 참고자료’는 “스크린쿼터가 투자협정 6조와 상충됨에도 동 제도를 협정의 예외로 하기로 양국간에 이미 합의된 상황”이라고 적고 있다. 물론, 이 문건은 스크린쿼터의 축소가 그 전제조건임을 분명히하고 있다. 여기서 일단 스크린쿼터의 축소보다 투자협정의 예외로 인정받는 점을 중시해 보면 이 전 장관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시 이 장관이 제시한 세 가지 단서조항 중 또다른 하나는 “한국 영화 산업이 위기라고 판단되면 쿼터제를 회복하도록 하는 연동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지금 축소하고서라도 일단 예외로 인정을 받으면 나중에 다시 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전 장관이 연동제를 언급한 뒤, 연동제가 ‘한-미 투자협정이냐, 스크린쿼터냐’는 양자택일의 딜레마를 풀어줄 묘수처럼 여기저기서 언급이 되기도 한다. 그러자 같은달 18일 정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의 스크린쿼터 대책팀이 주한 미대사관의 경제참사관을 만나 미국이 연동제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물었고 “투자협정에서 연동제를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실제로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등 외국과의 무역협정에서 예외조항을 둘 때는 협정 체결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고(스탠드 스틸), 변경할 때는 자국 상품 보호를 낮추는 쪽으로만 허락한다(롤백)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이 녹록하지가 않다는 말이다. 멕시코의 사례가 여기에 딱 맞아든다.

멕시코는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스크린쿼터를 두되 단계적 축소를 미국과 약속했다. 이에 따라 ‘스탠드 스틸’과 ‘롤백’ 원칙대로 매년 스크린쿼터를 5%씩 줄여 98년에 완전히 폐지했지만, 그 사이 90년에 80편이었던 연간 멕시코 영화 제작 편수가 98년에 10편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멕시코는 스크린쿼터를 다시 도입했는데, 99년 22편, 2000년 27편으로 잠시 느는 듯하던 제작편수는 2001년 17편, 2002년 14편으로 다시 떨어졌다. 2002년 현재 멕스코의 자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4%에 불과하다.

이렇게 볼때 연동제가 묘수가 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그러면 다시 ‘투자협정이냐 스크린쿼터냐’는 원점으로 돌아오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시 짚어보면 스크린쿼터의 득실에 대해선 얘기가 많았는데, 투자협정의 득실에 관해선 그렇지 않았다. 지난해 재경부는 한-미 투자협정의 ‘득’에 대해 “한-미 투자협정을 맺으면 40억달러 외자 유치효과가 있다”고 했다. 반면 월드뱅크가 지난해 6월 낸 자료는 전세계 약 2천개에 이르는 양국간 투자협정 가운데 외국인 직접투자의 증가를 낳은 건 매우 적다면서 “투자 유치국이 투자국에 물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투자협정의 ‘실’과 관련해서는 스크린쿼터 외에도 △세이프가드 △분쟁 때 재판 관할권 △한전, 한국통신 등의 외국인 지분 제한 △연근해 어업 등등이 지적돼 왔고, 유관부처 사이에 이견도 불거져 나왔다. 그런데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발표가 없다. 한-미 투자협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교통상부와 경제부처 관리들이 토론 마당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영화인들은 “지난해 7월에 외교통상부 국장이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한 번 나왔을 뿐 그 뒤로 아무리 요청해도 나오질 않는다”며 자신들이 유령과 싸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