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하는가 담론

중세유럽은 기독교가 지배하던 신본주의 사회였다. 기독교에서는 천지(天地)와 인간은 신(하나님)이 창조하였으므로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죽어서 하나님의 곁(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삶의 가치관이요 목표였다. 그러기 때문에 중세 때에는 기독교리에 배치되는 어떠한 사상이나 학문이 발달할 수가 없었다. 중세 때 새로운 사상이나 과학적 이론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된 사람이 무려 3,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것은 사랑을 부르짖는 기독교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중세사회가 무너진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1세기 중엽, 기독교인들의 성지라고 하는 예루살렘을 셀주크투르크족이 차지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자 교황 우르반 2세가 성지회복을 이유로 십자군을 조직하여 1096년부터 1270년까지 200여 년 간 전후 10차례에 걸쳐 성지회복을 시도하였으나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는 단순히 전쟁의 실패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함께 로마교황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봉건지주 계급이 몰락하였으며, 상대적으로 왕권이 강화되었고 르네상스,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등 사회 전반적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르네상스란 말은 원래 재생(再生)을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기독교에 의하여 단절되었던 그리스 및 로마의 고전문화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해 짐에 따라 인간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인간간과 자연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를 ‘인간과 세계의 발견’이라고 하며 그것은 서양 근대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이후 자연에 대한 새로운 태도와 종교나 신학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탐구정신은 새로운 사상과 학문, 과학을 낳아 인류역사는 획기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으니 중세 이후 인류역사에 빛을 남긴 사람은 대부분 반기독교인 이었다. 그 한가지 예로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하였으며 다윈은 진화론(進化論)을, 프로이드는 정신분석학을 내세웠는데 이는 성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당시 기독교적인 인습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근세 인류에게 던져준 3대 충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으며 20세기 최대의 석학자라고 일컬어지는 버트란트 럿셀은 그의 저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이 세상은 신이 만들었다면 하나의 문제(창조의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게 된다. 즉 신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는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신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또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과학자 대회에서는 저명한 과학자 및 신부, 목사, 신학자들이 다수 참석하였는데 그것을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과 같은 우주과학 시대에는 신(神)을 전제로 하는 종교는 더 이상 존속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허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떠한 종교가 앞으로 존속할 수가 있는가? 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종교만이 존속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과학자 대회는 이렇게 신은 허위이며 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종교만이 존속될 수 있다는 중대선언을 했다. 신이란 애당초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신을 창조한 것이다. 즉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신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