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작품 분석에서는 시를 구성하고 있는 문법을 재구성

즉 위에서 언급된 <차이의 놀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실제 작품 분석에서는 시를 구성하고 있는 문법을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작업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분석하고 있는 또 다른 논문44)에서도 분석은 이 시의 통사론적이고 어휘론적인 구조를 파악하는데 머물고 있으며 이는 레비 스트로스나 야콥슨의 시분석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시를 구성하고 있는 <시의 문법>을 보여주는 시도이지 이러한 문법이 어떠한 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는가, 즉 <문법의 시>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지적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구조분석의 작업이 이른바 <뉴크리티시즘>에서 말하는 내재적인 형식적 연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나의 문학작품은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언어 이외에는 대치 매체가 없는 언어의 구조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문학작품 속에는 거대한 질서의 언어체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작품을 하나의 완전한 통일체, 즉 부분들이 일관성 있게 세밀히 짜여져 있는 존재로 보게 되며, 각 부분은 모두 총체적인 구조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45)

그렇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신비평 수용이 제기했던 여러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의식하고 이를 풀어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는가? 신비평은 크게 보아 비평연구의 아카데미즘 지향과 전후 탈이데올로기적 문학의 지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구체적인 작품을 검토하는데 있어서도 신비평은 그 분석력을 인정받았으며 훌륭한 작품은 유기적이며 복잡한 의미의 구조를 지닌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지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신비평 수용은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다.46) 다시 말해서 구조주의는 부정적 결핍으로 간주된 경직된 문학사회학이나 실증주의적 접근 방식 그리고 문학에 대한 감상적이고 직관적인 태도에 대한 반작용에 치우친 나머지 이전의 신비평 수용이 낳은 문제점들에 대해 숙고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사실 신비평 수용 이전의 한국문학연구 상황과 구조주의 수용 이전의 분위기는 그 시간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흡사한 측면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분석비평의 방법이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기부터이다.(…) 이 무렵에는 한국문학 연구분야에서 일종의 변혁이 시도된다. 그 이전까지 우리 주변의 한국문학연구는 대체로 서지주석적 방법, 전기연구, 역사배경론, 딜타이나 텐느류의 양식, 상황론, 사회경제사의 입장들이 서투르게 적용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들 여러 업적 가운데는 상당한 난점을 지닌 것들도 있었다.47)

이미순은 신비평의 수용을 검토하는 글에서 신비평을 지나간 시대의 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에 대한 논의 자체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려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신비평과 구조주의의 연속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현대비평에 신비평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면, 또 작품의 형식분석을 비평에서 배제할 수 없다면, 신비평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신비평의 부정은 신비평 자체를 정면으로 검토함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비평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신비평에 대한 검토는 긴요한 과제가 된다. 신비평은 구조주의나 후기 구조주의, 나아가서 해체주의와 일정 부분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48)

신비평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백철은 신비평을 비판적인 자세로 받아들이자는 제안을 하지만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진전된 논의를 보여주지 못했다.49) 구조주의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은 신비평이 수용되었던 1950년대와는 달리 외국의 문학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주체적 자각의 노력이 두드러졌던 시기였다. 구조주의는 한편으로 앞서 지적한 부정적 결핍에 대한 비판에는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신비평의 수용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문학에 대한 분석적 방법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문학의 역사는 항상 선조적인 발전의 궤적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과거의 사례가 보여주었던 공과를 거울로 삼아서 보다 성숙한 문학의 자세를 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 신비평 수용과 구조주의 수용 사이에 질적인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이 점에서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