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대공황의 전조

1990년대에 들어와서 세계 금융시장은 매우 위험하면서도 흥미로운, 마치 스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긴장감 넘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대규모의 투기성 자금을 가진 전문 국제 투기꾼들이 세계적인 자본시장 자유화의 흐름을 타고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어느 한 국가 또는 지역의 경제 및 금융시장을 과열시킨 후 투기차익을 챙기고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경제를 혼란시킨다. 그리고 금융시장구조가 취약하거나 외환보유고가 불충분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공급의 목줄을 조이는 등 각종 외환수급 조작방법으로 환차익을 챙기면서 해당국가의 화폐가치 폭락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이들 국제 투기꾼들의 행태는 마치 어리거나 병들은 양들을 사냥감의 대상으로 정한 후 집단 공격을 가하는 늑대의 그것에 비유될 수 있어, 공격의 대상이 되는 국가들은 미국의 영향력하에 있는 IMF나 세계은행 등 외부의 지원 없이 자국의 금융수단만으로는 도저히 파국을 모면할 수 없게 되어 있다. 1997년 7월 초 태국에서 시작된 후 10월에 홍콩의 금융시장을 뒤흔든 다음 이제는 한국에 상륙하여 ‘국가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금융위기의 주범들은 바로 이같은 투기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동남아시아 및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위험한 금융위기 상황들은 이들 국가에 커다란 상처를 입힐 뿐만 아니라, 조만간 이 지역과 가장 긴밀한 경제관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에게도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1989년의 거품경제 붕괴 이후 지금까지 1930년대에 있은 대공황에 버금가는 매우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경제의 침체는 일본의 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경제가 타격을 받게 될 경우, 일본의 대미 자금회수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미국의 증시붕괴 및 달러화의 폭락으로 이어지고, 달러화의 폭락은 달러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 신용체제의 혼란과 무역결제 수단의 부재를 초래함으로써, 새로운 대체 결제수단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세계의 교역과 생산은 끝없는 악순환적인 축소, 즉 세계경제의 대공황으로 연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증시의 붕괴가 세계경제에 대해서 이처럼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는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주요국가들의 실물경제가 1990년대 초부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시 붕괴로 인한 미국 경제의 혼란은, 미국의 힘으로 간신히 지탱해오던 세계경제의 척추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정치·경제·사회 등 많은 분야에서 탁월한 이론을 개발한 사카르와 그의 제자이며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라비 바트라(Ravi Batra) 교수에 의하면, 경제대공황은 부의 극단적인 편중과 자본의 투기적 투자가 극에 다달았을 때 발생하게 되며, 대략 60년의 주기로 발생되면서 부의 편중을 해소시킨다고 하였다. 통계자료를 통한 분석이 가능한 185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대상으로 볼 때, 대공황은 1870년대와 1930년대에 일어났으며, 그의 해석대로 약 60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났다고 하겠다.

경제대공황이 일단 시작되면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낮은 극히 일부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특히 대공황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국가들은 정부의 누적된 재정적자가 커서 공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재정정책을 구사하기 어려운 국가들, 이미 실업률이 높고 장기간을 경제적 어려움에서 지내온 국민이 많은 나라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들,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나라들, 그리고 공업용 원자재를 수출하고 식량을 수입하는 국가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 대공황시에는 비필수적 공산품에 대한 수요는 크게 줄어 들게 된다. 특히 소비자의 효용 극대화보다는 기업의 이윤 극대화에 우선을 두어 온 현대 자본주의의 기업 윤리관 때문에, 사치품이나 비필수품이 생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과소비가 조장되어온 상황에서는, 대공황이 오게 되면 공산품의 판매부진은 매우 심각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번의 대공황시에는 세계가 공산품의 판매부진, 그리고 아래에서 언급하게 될 농산물 공급부족이라는 양대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자본주의의 사회질서는 뿌리채 흔들리는 위기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험한 현재의 상황 하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여지란, 정작 경제 대공황이 왔을 때 그 효과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를 지금부터라도 강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카르는 대공황의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효과적 대책의 하나로, 국가적·개인적 차원에서 자급자족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우리 나라와 같이 농산물을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대외의존도가 지극히 높은 나라의 경우에는, 농촌과 농업부문의 활성화가 가장 중요한 대공황 대비책의 하나인 것이다(자세한 설명은 필자의《자본주의의 종말》을 참고로 하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