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의 역할과 예언자 엘리야

야훼의 역할을 예언자 엘리야의 역할 보다 앞세움으로써, 이 이야기들은 그것들이 지니는 온갖 차이에도 관계없이 주제상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사실 엘리사 이야기에는 이런 통일성이 부족하다. 이 통일성의 뼈대는 야훼와 바알 사이의 불꽃튀는 대결이다. 이 대결이 이야기들 전체에 관통하고 있다. 이 대결은, 잠시 평온해진 듯 보이다가도, 단 일격에 다시 폭발하여 이스라엘 내부에 갈등의 골을 깊이 패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비를 내리게 하는 것도, 병자를 치유하는 일도, 이제 더 이상 바알의 역할이 아니란 말인가? 엘리야는 이런 사실을 아무 문제없이, 아주 단순하게 인정하였다. 그는 홀로 능력많으신 야훼를 위해 전적으로 무기력한 바알과 대결을 벌렸다. 그가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벌렸던 논쟁을 보면서, 우리가 그에게서 이미 유일신 신앙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의문이다. 대단히 예리하였던 그의 논쟁에서 볼 때, 그가 바알에게도 상대적인, 그러나 저급한 수준의 신적인 능력을 인정하였을 가능성을 우리는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바알이 이러하든 저러하든 이스라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오직 야훼에게만 속하였다는 이 아주 뿌리깊은 명제를 위해서 엘리야같이 철저하게 싸웠던 인물이 이전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야훼의 이스라엘을 향한 이러한 관계를 넘어 저편에 있는 무엇인가 다른 것을 말하였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야훼에 관해 경험한 것들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곧 그는 야훼가 그 백성들의 배신과 타락을 묵과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반드시 응징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집행자로 그는 세 사람을 세웠는데, 곧 아람인 하사엘과 반란자 예후, 그리고 예언자 엘리사가 바로 그들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야훼는 이후로는 이 남은 자들하고만 관계한다는 것이다. 물론 7000명이라는 숫자는 대략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리라.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고려할 때, 이 숫자는 너무나도 적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야훼가 이스라엘 백성을 벌한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신앙역사에서 엘리야 이전에도 이미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고, “남은 자”를 남기겠다고 하는 것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신앙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엘리야 이후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이 확산시켜야 할 일의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1. 엘리사

원래는 한덩어리로 되어 있던 엘리사 이야기에 신명기 역사가들이 개입하면서, 엘리야 이야기 보다도 더욱 더 분산되었다. 그것은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고, 그가 지녔던 카리스마가 엘리사에게 이전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래서 열왕기하 2장은 엘리야가 아니라 엘리사 이야기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무덤에 안치된 시신이 되살아나는 기적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예언자의 제자들 (Prophetenj nger )이라 불리우는 그룹과 함께 엘리사의 활동상을 그린 것이다. 이 그룹은 이스라엘의 사회질서라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관심을 아주 크게 불러일으킬 만한 집단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왕국의 남부지방 몇 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데, 그들이 지방성소들 (die lokale Heiligt mer) 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개별 신앙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수도원같은 생활양식을 공유한 것 같다. 이 사람들은 교훈을 듣기 위해 어떤 경우에든 정기적으로 모였다고 전해진다 (왕하 4:38; 6:1). 엘리사는 이들의 최고 우두머리였으며, “아버지”라 불리우며 존경을 받았다 (왕하 6:2. 12. 21 참조 2:12). 전해지는 이야기들 속에 이 그룹이 처한 상황이 분명하게 전해지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낮은 계층, 더 나아가 파산지경에 이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서슴없이 인정할 수 있다. 이들의 음식과 주거 환경은 형편없었다. 빚진 일에 관한 언급도 한번 나온다 (왕하 4:1-7). 이들의 성격으로 보건데, 혹시 성소마저도 이들이 피난처로 삼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진지하게 물을 것이 또 하나 있다. 곧 이 그룹에 속한 이들이 진정 스스로 원해서 이 길을 선택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경제적인 파산이 정상적인 시민- 혹은 농경사회로 들어가는 문을 이들에게 닫혀지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에 관한 한 이 영락 (零落)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종교적인 기초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들은 가부장적인 야훼신앙에 따르는 생활질서 (토지법)를 더욱 고수하려 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보다 더 봉건적인 가나안의 경제질서 내에서 자신들을 지켜낼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예언자공동체를 순수하고, 혼합되지 않은 야훼신앙의 마지막 보루로 여긴다면,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야훼 신앙의 지속적인 유지, 곧 그 신앙이 계속 보존되어야 한다는 특별한 의지에서 그들의 의의를 높이 평가한다면, 별로 차질이 없을 것이다. 야훼신앙과 하나님의 법을 무서우리만큼 철저하게 따랐던 마지막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여기서 출발한 이런 현상을 우리는 후기 예언자들에게서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그 수수께끼같은 사회-경제적 독립성, 신분적인 그 어떤 제약에서의 자유를 향한 초석이 놓여졌다. 이 독립성과 출신신분을 전혀 묻지 않는 이것은 나중에 예언자로 나서는 전제조건이기도 하였다. 이후 예언자들은 이에 바탕하여 파산당한 사람들 위한 거대한 장을 열고 그 명맥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비가 되는 것이 무엇을 뜻하며, 야훼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벌써 이 때에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모스와 이사야는 단지 그 표상을 대변하는 것만으로도 족하였던 것이다.

“직분”에 대한 물음, 곧 도대체 예언자 엘리사의 과제가 무엇이었느냐 에 대한 대답은 아주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쇠를 물 위에 떠오르게 하였으며, 샘물을 맑혔으며, 적군의 눈을 멀게 만들었고, 문둥병을 치유하였으며,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도 되살려내었다. 구약성서 가운데 기적이야기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 없다. 다른 그 어디에도 기적을 이렇게 천진하게 기뻐하는 곳이 없으며, 예언자가 지닌 카리스마적 능력을 이렇게 계속해서 새롭게, 놀랍게 증거하는 곳도 없다. 엘리야의 경우에 비교해 보면, 엘리사는 이들 이야기의 중심에 등장하고 있다. 그는 –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인격체는 아니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자로, 기적을 낳는 카리스마를 소유한 자로 – 이 기록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록 이런 기적 이야기들이 엘리사 자료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이 예언자가 활동한 것 가운데 일부분만을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자칫하면 이 일부분에 가려서 예언자가 활동한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단지 민간전승과 결부되어 있는 부분에만 사로잡히게 할 지도 모른다. 그런 것 중에 하나가 그 당시에는 안식일이나 초승달이 뜨는 시기에 하나님을 찾아가 묻는 관습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점이다 (왕하 4:23). 그렇지만 그의 활동의 다른 측면, 곧 정치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몇몇 이야기들 속에 자유자재로 포함되어 있다. 사실 엘리사 이야기의 중점은 이 정치적인 영역에 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 만일에 이 예언자 공동체가 기존 사회체제의 일원에서 떠나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그들이 공공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사사로운 명상에만 빠져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옳은 것이다. 고대근동사회에서 그런 그룹들은 사회전체의 문제를 자기들 문제로 특별히 정열적으로 받아들이곤 하였다. 때때로 그런 참여는 아주 폭발적으로 널리 번져 나가기도 하였다. 이야기꾼은 엘리사의 영향력이 다마스커스에 있는 반란자 하사엘에게 까지 미쳐서, 그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왕하 8:7-15). 물론 이 기록이 이 사건의 역사성을 제대로 반영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 전승이 전설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이는 예언자들이 아주 폭넓게 활동하였으며, 매우 치밀한 정치적 음모에도 가담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엘리사가 손에 쥐고 있던 정치적 입장이 어떤 성향이었는 지에 관해서는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기존의 오아조를 무너뜨리는 이야기에서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밝은 대낮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인 것이다. 이 처절한 사건의 시초는 다름아니라 엘리사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순순한 야훼신앙을 지키려고 이 정열적인 사람을 왕으로 지명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후가 바알 및 바알 숭배자들과의 대결에서 피바다를 만들 것을 엘리사가 예견하지 못하였다고 추측할 수 없다 (왕하 9-10장). 사실 북왕국의 왕권은 기본구조상 카리스마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엘리사 같은 예언자들은 왕을 지명하거나 그들이 일으키는 혁명에 개입하는 것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구 (die direkte Organe) 로 자처하였다. 우리가 다루는 사람들은 엘리야도 그렇고 엘리사도 그렇고, 또 구약성서에서 야훼신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사람들의 경우에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오로지 영적-종교적인 세계에서만 살다 간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신앙, 가르침, 예배,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개혁하는 사람으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섬긴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에는 정치적인 인물들도 있었다. 그들은 역사적인 존재로서 정신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분야에서도 활동하였다.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은 적지않은 위협을 받았으며, 그만큼 이 분야의 질서와 보호를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엘리사는 자기 스스로를 바로 이러한 보호기관이자 이스라엘의 수호자로 인식하였으며 – 오직 야훼 앞에서만 생존권을 지니는 참된 이스라엘과 같은 -,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이런 사실은 그에 대한 호칭, 곧 흔히 번역되기를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 (兵車), 군마 (軍馬)” 라고 하는 데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실제로 전설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그는 군사적 지략가로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아직도 제의적인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으나, 그는 전략을 조언하거나 초자연적인 지식으로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등 군사적인 일에 직접 관여하였다 (왕하 6:8-23). 그러나 예언자를 이스라엘의 참 수호자로 부르는 이 말은 상당히 철저한 슬로건, 곧 거의 종교적인 프로그램을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단기간적인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무게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던 시절을 향한 기억이 들어있다. 그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전차를 사용하였지만, 이스라엘을 무기를 변변히 갖추지 못한 채, 오직 야훼에 의존하여 싸웠던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그 시대로부터 결론을 찾아내었다. 곧 이스라엘의 도움은 군마와 병거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에게만 있다는 모티브를 더욱 고조시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런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던 시절을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린 세대들이 그런 경험들을 다시금 자기 시대의 것으로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엘리사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이것을 지원하였다! 야훼는 아직도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 물론 이것은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이기는 하다. 이스라엘은 참혹한 재난들을 겪어야만 되며, 그들이 야훼의 환심을 얻어서 다시 한 민족을 이룰 때까지, 재난들 속에서 깨달아야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들을 약 100여년이 흐른 뒤에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그리고 미가들이
나서서 그들 방식대로 전개하였다. 그들에 비해 엘리야와 엘리사가 펼쳤던 미래관은 아직은 매우 단순하고, 좀 미숙한 느낌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