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도 훈련되지 못하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총을 쏠줄도 모르면서 전쟁에 나갈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총을 쏘지 않고 전쟁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숨어다니고, 도망 다니는 길이다. 목회자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모든 책임과 사역을 담당하므로서, 한 사람이 수 많은 책임을 지겠다는 의식과 용기를 내어 영적 전쟁에 나왔으나, 이 영적인 전쟁에서 전혀 훈련되지 못하고, 싸움도 해보지 못한 사람이 사령관이 되었다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적인 사단은 너무나 훈련되지 못하고,무장되지 못한 목사와 그의 가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미국의 한 도시의 목사는 구원의 확신을 종교적인 확신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신념과 계획과 용기와 의지를 목회의 가장 큰 무기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영학적인 입장에서 교회를 이끌어 왔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싶게 말하면 많은 목사들이 성공하는 교회를 바로 이 목사처럼 인간경영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만족해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목사들이 추구하는 목회인 것이다. 우리는 그와같은 태도나 사역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비젼을 감당하는 본질에 대해서 근본적인 해답을 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주님의 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에 훈련되고, 성령에 의해 무장된 예수의 제자삼는 사역과 삶의 능력을 나누면서 이 본질의 사역을 말하여 보면, 곧 바로 자신이 바로 그 일에 무능력하다고 고백하였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인도에 의해서 탄생된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또한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훈련되고, 삶과 사역에 무장되어야 한다. 바로 그 일이 지역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사역지로 변화시키는 중대한 일이다.

한 지역의 교회에서 지도자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가 주님의 제자로서 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역의 가장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조금씩 단계를 훈련과 점검을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제자삼는 사역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 사역은 피라밋형으로서 피라밋 꼭대기에서 제자삼는 사역을 통하여 아래로 점점 발전하고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예수의 사역은 전도를 위한 훈련으로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재개발하여 더 많은 능력을 감당하는 지도력을 배양하는 데 촛점을 두었다. 시작된 모임은 지도자를 돕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훈련시킴으로서 예수가 행한 사역을 그들이 수행하도록 훈련시켰다. 문제는 이 모든 사역의 배경에 성령께서 임재하셨던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오늘날 수 많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개발되었으나, 성령의 인도하심과 임재를 함께 수행하는 훈련이, 오히려 제자훈련 사역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지나치게 관념적인 자세로 인식하고 있고, 너무나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반면에 실제적인 삶은 나약하고, 게으르게 길들어 버린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훈련과 사역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