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중 공동체에 의한 대안적 양성성의 구현

그간 펼쳐보여진 송기숙의 문학 세계는 정의로움을 향한 실천적 삶의 서사적 현현(顯現)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문학은 치열했던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같은 평가에 걸맞게 그의 소설들은 민족사적 불행에의 극복 의지와 민중 공동체의 회복 지향이라는 거대 서사 중심으로 일관되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남성적 힘의 서사는 뒤틀린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작가의 일관된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민족과 민중에의 역사적 투신이라는 삶 자체의 열정으로부터 근원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의 문학적 성과를 빛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송기숙의 소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서사 구조와 맥락에 의한 독해로 남성적 거대 서사라는 단선적 이해에 치우치기가 쉽다. 그동안 송기숙의 소설에 대한 평가가 농촌소설, 혹은 민중문학 등으로 범주화된 근원적인 이유도 표층적 독서와 이해로부터 파생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매우 다성적이다. 민중들의 삶이 녹아 스며들어 있는 언어와 속담, 우화들에서도 그러한 다성성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의 소설의 흔적, 혹은 이면의 맥락들 속에서 서사적 다성성은 탐색될 수 있다. 그 중 한 맥락이 바로 남성적 힘의 서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끈끈한 동지애적 정을 나누는 민중공동체 속의 여성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성적 요소들은 작가의 치밀한 의도의 소산물이며, 그의 결연한 의지와 역사적 대안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여성 민중들에 의해 드러나는 대안성은 그의 작품이 만만치 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며, 그 메시지의 묵중함과 어울려 역사 현실의 사각 지대를 날카롭게 꼬집어 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의 의미는 어쩌면 남성 화자와 인물들에 의해 제시되는 거대 서사를 통해서라기 보다는, 그 이면에 비쳐지는 여성들의 담론과 그 실현 속에서 확연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소설속에서 구현되고 있는 표면적 주제보다도 그것들에 가려진 이면의 주제가 정작 그가 구현하려는 궁극의 주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그의 소설에 대한 표면적 서사 독해를 넘어서 이면적 서사 독해로 나아가다 보면 굴절된 역사 현실 속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의 정체성이라는 것 역시 단선적 시각에 의해 강요된 것일 수도 있으리라는 새로운 해석 가능성에 다다르게 한다. 이러한 이면적 서사 독해의 과정은 그간 거대 서사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분석되어온 한계를 넘어 송기숙의 문학 세계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송기숙의 “은내골 기행“, “오월의 미소“, 「파랑새」, 「갈머리 방울새」, 「어머니의 깃발」등을 텍스트로 하여 남성적 시각에 의해 조명되어온 역사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으나, 설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민중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대안적 양성성을 구현해내는 여성들의 의식을 살펴보려 한다. 이같은 연구의 목적은 민중의식과 설화적 상상력에 바탕한 여성성의 승화와 대안적 양성성의 구현이 위의 작품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밝힘으로써 송기숙 소설에 내재해 있는 작가 의식의 실체와 본질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데 있다.

  1. 파괴된 낙원, 스러져간 여성들의 삶

송기숙의 소설에서는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 매우 유형적으로 드러난다. 이같은 유형적 여성들의 삶 중 하나는 바로 첫사랑과 함께 하는 낙원, 그리고 그 사랑의 파괴로 인한 낙원 상실의 경험을 극명하게 제시해주는 여성들의 공간성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서 첫사랑의 여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첫사랑의 여성들은 단지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들이 소속된 공간 즉 ‘낙원’이라고 하는 공간을 대변해주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낙원으로 설정된 공간과 순결한 여인들의 모습은 “은내골 기행“에서의 ‘은내골’과 ‘혜선/윤선경’, 「갈머리 방울새」에서의 ‘갈머리섬’과 ‘윤심이’, “오월의 미소“에서의 ‘소안도’와 ‘미선/영선’ 등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서 중심 인물들이 겪어가게 되는 첫사랑의 상실 과정은 당연히 사랑의 아픔이라는 개인적 실연만이 아닌, 역사속의 구체적인 사건에 의한 낙원 상실의 경험이다. 송기숙의 소설에서 첫사랑이란 사랑 자체의 의미보다는, 개인적인 글쓰기가 아닌 역사적 글쓰기로 나아가게 되는 장치인 것이다.

“은내골 기행“에서 첫사랑 혜선은 <은내골>이라는 공간 그 자체로 제시된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을 뒤로 하고 서울을 뜨게 할 만큼 ‘명호’를 사로잡은 <은내골>은 그의 기억 속에서 첫사랑 혜선으로 상징될 수 있는 낙원과, 그 사랑의 상실을 통해 낙원 상실을 제시하는 공간이다. 6.25가 한창이던 어린 시절 혜선을 만나 사랑을 빌었던 미륵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던 은내골은, 자신의 첫사랑인 그 소녀와 가족들의 몰살을 경험한 채 그 곳을 떠나야 했던 아픔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 찾은 은내골은 그에게 또 다른 만남을 안겨 준다. 진국사에서 미륵을 그리고 있는 ‘윤선경’, “은내골 기행“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파랑새」에서의 어린 시절 혜선을 연상시키는 그녀와의 아름다운 만남 역시 개인적인 사랑의 과정에 머물지 않고, 그를 복잡한 역사적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는 그것이다. “은내골 기행“에서 또 다른 은내골, 낙원의 상징이던 윤선경은 ‘스스로 미륵 신앙의 힘을 입어 태어났으므로, 미륵의 딸.메시아의 딸.혁명의 딸’임을 자처하던 주체적 여성이었으나, 자신이 친일파에게 강간되어 태어났음을 알고, 연인으로 발전되어 가던 ‘김명호’와의 만남도 저버리는 등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이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히스테리 증세를 가진 윤선경은 자기 자신에게 무언가 고유한 것을 반정립시키지 못하면서 자신의 심리적이고 육체적인 박탈에 대해 말없이 항거한다. 게다가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간첩 김동춘 사건에 연루된 채 공안당국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받은 폭력의 잔인성으로 인해 왜곡된 역사 앞에 무릎 꿇고 만다.

“은내골 기행“의 모태가 되었던 중편「파랑새」에서 ‘명호’의 첫사랑인 ‘혜선’이 역사의 거대한 폭력 앞에서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리듯, ‘혜선’이 성장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선경’마저 뒤틀린 역사 앞에 무너져 내려, 폭력적 역사 앞에서 첫사랑 여성 인물들은 극히 무력한 모습으로 스러져 가고 만다. 그리고 그녀들이 상징하던 낙원 역시 폭력적인 현실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파괴된다. 그러므로 작품 전반부에서 삭막한 도시적 공간의 대안으로써의 첫사랑의 낙원으로 제시되던 「파랑새」와 “은내골 기행“에서의 <은내골>은, 이제 악몽과 같은 분단의 상처가 되살아나는 공간일 뿐이다. 즉 첫사랑 혜선과 선경과의 만남은 <은내골>의 ‘낙원 상실과 분단 시대의 공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중적 의미를 지닌 공간성을 대변해주는 요소인 것이다.

한편 중편「파랑새」이외에도 “은내골 기행“과 상호텍스트성을 지니고 있는「갈머리 방울새」라는 작품에서 역시 여성인물을 통한 낙원 제시가 나타나고 있다. 간첩잡기에 미쳐 사람을 죽이고서도 여전히 수사에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 공간의 인물 ‘문성준’은 갈머리섬에서 순진한 시골 소녀 윤심을 만나면서 잊고 지내던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하나씩 되찾게 된다. 그림을 좋아하던 교사 시절의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윤심과의 만남. 윤심을 겁탈하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순수한 마음에 당황하며 서둘러 갈머리섬을 떠나던 성준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취조 수첩들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다시 이 섬으로 돌아오겠다는 성준의 절규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없게 만든 분단 현실 공간에서 벗어나, 윤심이 있는 낙원 갈머리섬으로의 귀향을 갈구하는 외침인 것이다. 윤심은 성준을 미쳐 날뛰게 했던 현실이 아닌, 환상 같은 낙원인 갈머리섬의 상징인 셈이다.

이와 같이 여성들에 투사된 폭력에 의해 겪게 되는 실연과 낙원 상실의 과정은 “오월의 미소“에서도 극명하게 제시된다. 80년 5.18 광주 항쟁의 진압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감히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며, 특히 이 작품에서 주인공 정찬우의 첫사랑이었던 미선과 그 언니인 영선에게 가해진 공수부대원의 성폭력은 그들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할 만큼 잔인한 것이다. 그녀는 엄청난 역사적 폭력의 대가를 치루는 희생양이 되어 공수부대원의 아이를 임신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비없는 아이를 낳으면서 어두운 현실의 질곡을 이겨내려 몸부림치지만, 결국 작품 전반부에서 이상적 낙원으로 제시되었던 섬 소안도 앞 바다에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고 만다. 영선에게 가해진 폭력의 상처는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송기숙 소설 속에서 여성들의 삶은 폭력적인 역사 앞에 선 사회의 하위체로서의 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역사적 폭력이 여성들에게 가해짐으로써 원형적 공간으로서의 낙원은 소멸되고, 현실 속 공간에서 스러져가는 여성들의 모습들이 그의 소설에서 극명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작가는 이같은 유사한 구도를 지닌 순환적 장치를 통해 반복되는 역사의 폭력성이 개인에게 특히 이 사회의 하위체(subaltern)인 여성에게 미치는 파장을 사실적으로 제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1. 공동체 속의 자매애와 여성성의 승화

뒤틀린 역사 속에서 스러져가는 존재로 형상화되는 송기숙 소설 속의 여성들은 그러나 파괴된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가부장제로 표상되는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여성이 당하는 억압으로서만이 아닌, ‘여성의 잠재적인 힘의 원천’으로서 승화되어 드러난다.

이와 같은 여성성의 승화는 민족 이산의 아픔을 다룬 작품 「어머니의 깃발」에서 올곧게 형상화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일상 생활속에서는 억눌려 있던 여성들이 마을의 위기 상황에서 도깨비굿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낸다. 금권적 권력으로 마을의 정신적 토대인 미륵을 파가려는 외부 사람들을 도깨비로 여겨 그들을 응징하려 하는 진도의 여인들은 모두 한데 모여서 장대끝에다 피묻은 속곳을 높이 내걸고, 쇠불이를 두드려 소리를 내어 도깨비들을 내쫒으며 여성들의 강한 현실 대응력을 보여준다. 남성의 역사속에서 소외되고 짓눌려온 여성들이, 남성들의 힘이 아닌 여성들의 집단 의식을 통해 이제 주체적으로 사회 문제의 전면에 나서서 폭압적인 역사에 직접 대응한다. 왜곡된 분단 현실로 인한 상황을 징벌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이같은 과정에서 여성들은 왜곡된 성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 보인다. 즉 평소에는 불결한 것, 은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여성들의 월경혈이 묻은 속곳을 생명을 잉태케하는 모성적 생식의 힘으로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며 이로써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다.

깡깡, 요란스런 쇠붙이 소리와 함께 와, 함성을 지르면서 수십 명의 여자들이 이장집 대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대여섯 개의 깃대를 앞세우고 횃불을든 여자들이 쇠붙이를 두들기며 악을 썼다. 얼굴에는 모두 가면을 쓰고 양철통.밥그릇.세수대야 등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들은 이장집 마당을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치 폭포수가 웅덩이를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얼룩덜룩한 깃발은 도무지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었다.(중략) “아니, 이것이 시방 먼 일이요?” 이장이 마루로 나서며 말했다.“너는 썩 들어가, 이놈아!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얼씬거리냐?” 큰 깃대 든 여인이 깃폭을 이장 얼굴에 들이대고 휘저으며 악을 썼다. 이장은 앗 뜨거라, 그 깃폭이 행여 자기 몸에 닿을 세라 두 손을 내두르며 방안으로 내뺐다.(중략) “시방 이 소리가 먼 소린 중 아냐? 옛날부터 우리 동네서 도깨비 귀신 쫓아낸 소리다. 소작 농간 하던 마름 귀신, 징용 잡아가고 생과부 맨들던 징용 귀신, 공출 뜯어가고 배 곯리던 공출 귀신, 생사람 쏴죽이던 총잡이 귀신. 촌가시네 홀려 가던 양공주 귀신, 장세 폴아묵은 장세 귀신, 이런 귀신.도깨비 다 몰아낸 소리여. 그런디 이번에는 미륵보살님을 파갈라고 잡귀가 달라들어? 어림없다. 이 못된 귀신아, 썩 물러가라. 만약에 관을 앞세우거나 달리 농간을 부린 날에는 우리 동네 여자들이 피속곳 앞세우고 네년 집구석까지 쫓아 올라갈 것이다. 못된 귀신아, 썩 물러가라!”

이러한 여성들의 도깨비굿은 단순히 미륵을 파가려는 외부 사람들을 물리치기 위한 집단보수적인 성향의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분단 현실을 불러일으킨 폭력적인 남성의 역사에 대한 뼈아픈 질책이다. 여성들의 이같은 질책은 여성의 생식적인 힘에 주술적인 힘을 실어 드러나고 있다. 마을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서 잘못을 규명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이같은 주술적 의식은 어머니에서 딸로, 역사 속 모계적 질서에서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깃발」에서 이같은 도깨비굿 이외에도「당제」에서 미륵굴과 당제, “은내골 기행“의 미륵을 통해 드러나는 여성 민중들의 모성적인 힘은 현실의 문제를 화해와 상생으로 해결하려는 작가의 의식을 서사적으로 구현해내기 위한 장치이다. 그중 ‘미륵’은 가부장적 유교 문화를 근간으로 지탱해온 우리의 문화적 지형 속에서 여성들의 신앙의 대상이자 민중의식 그 자체가 되어 왔다. 가난과 칠거지악, 무지 등에 갇힌 여성들의 처지와 고통은 금으로 화려하게 도금하고 단청이 요란스런 대웅전에 버티고 있는 부처님의 것이 아니다. 약자중의 약자이며, 이 사회의 하위체인 여성들이 자기들이 땀 흘려 모 심고 김매는 논둑 밭둑에 자기들처럼 눈비 맞고 있는 미륵을 숭배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이들 여인들의 모성은 ‘미륵’이라는 자연적 생명력과 토속적 신앙을 통해 세상살이의 고통을 이겨내며 마침내 세상으로 희망을 품어낸다.

따라서 송기숙의 소설에서 분단 현실에 대한 작가의 극복 의지도 ‘미륵’이라는 여성 민중들의 모성 논리에 의거한 설화적 상상력으로 표출된다. ‘미륵’은, 이산의 고통 속에 살아가며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6.25전쟁의 상흔과 유신 압제 등 반복되는 역사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평화로운 삶을 갈구하는 여성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을 안고 서 있다.

“저한테 쏟아지는 눈총쯤이야 파탈하고 살아갈 수 있사오나 눈동자 초롱초롱한 어린 것이 중 아들이라고….. 머루같이 검은 눈에 눈물을 흘리고 들어올 때는….. 영험하고 영험하신 미륵부처님, 비옵고 비옵나이다. 나라가 하나 되어 북쪽 사람들이나 남쪽 사람들이나 서로서로 수원수구 뒤로 하고…. 애끓는 소원을 자비롭게 굽어살피시옵소서.”

「어머니의 깃발」과“은내골 기행“,「당제」등에서 ‘미륵’과 ‘당제’ 등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에서 민초들의 뿌리깊은 염원과 공동체의식을 감지하게 된다. 은내골의 종교적 상징물들인 ‘미륵’과 ‘선돌’들은 제 나름의 전설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전설을 알고 있는 집단적 주체인 은내골 사람들은 장구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정신적 유대감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미륵을 지켜내고, 선돌을 다시 세우거나 당제를 부활시키려는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깃들인 의미를 뚜렷이 자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집단무의식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민중적 삶의 절절한 갈구와 그들의 의지를 반영하는 장치인 ‘미륵’을 둘러싼 설화적 요소들은 작가의 민중 문학적 지향에 걸맞는 독자적인 미적 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도깨비굿’ ‘미륵’ 등을 통한 모성적 힘의 발현, 즉 어머니로부터 딸로 이어지는 여성 계보의 종적 구조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대지와 같이 상징화되지 않은 관계이지만, 가부장적 상징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사회의 위기 상황에서는 가부장적 질서를 해칠 수 있는 폭발적인 핵심을 이룬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작게는 마을 공동체의 사건을, 크게는 분단된 역사 현실을 있게 한 근본 원인을 규명하여 징벌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녀 관계로 이어지는 여성의 종적 계보외에도 여성과 여성간의 자매애가 강조되는 횡적 구조 역시 송기숙의 소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은내골 기행“에서 한과 인고의 삶을 돌보며 살면서도 ‘다른’ 도덕적 목소리와 ‘모성적 사고’를 지닌 우리 근대사 속의 여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월북한 남편이 고정간첩을 남파시키기 위해 다녀간 그 밤, 잉태된 아들을 지켜 내기 위해 스님과 통정한 여인으로 몰려야 하는 한몰댁과 같은, 은내골의 여인들은 반복되는 역사의 폭력성 속에 노출된 채 살아가야 하는 역사의 희생적 존재들이다. 6.25를 전후로 좌익이나 우익에 가담해서 서로를 상처 주던 이념적 주체로서의 남성들은 이제 사라져 버렸고, 은내골 여인들은 그들이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 안고 세대를 이어가야 하는 짐을 짊어진다.

그러나 역사의 질곡에 희생된 아픔을 공유한 여인들은 자매애(sisterhood)를 지닌 채 서로의 고통을 돌보며 살아간다. 생존의 세계에 놓여 있는 이들에게는 이념의 차이란 무의미한 것이며, 자아와 타자가 함께 할 때만 ‘우리’라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6.25가 끝난 후 충청도의 어느 병원에서 거의 죽게 된 옛날 인민위원장의 부인인 한몰댁을 데려와서 치료해주고 친척이 벌던 논도 찾아준 후 이웃에서 친형제처럼 살아가는 과거 경찰 간부의 아내 들몰댁의 관계에 대한 감각과 타자에 대한 책임은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적 연대의식을 새롭게 보여준다.

“이 동네는 그때 경찰 쪽으로도 꽤나 높은 분이 있었는데 그분 부인도 그 무렵 과부가 되어 지금은 두 과부가 집도 서로 이웃집에서 친형제처럼 살고 있지요. 경찰간부는 빨치산 토벌하다 죽고 인민위원장은 월북을 했다는데 그런 사람들이 친형제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곁에서 보기에도 모양이 좋더군요(…).”

작년에 여기 왔을 때 명호는 그 과부들 이야기를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그때 교수들은 당산제를 다시 지내게 된 계기를 집중적으로 물었는데 거기에는 동네 여인네들이 큰 몫을 했다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여인네들 이야기를 하다가 6.25에까지 이야기가 미쳤던 것이다. 특히 경찰간부 부인과 한몰댁이 앞장을 섰다며 그 사람들은 평소에도 동네 어른 노릇을 한다고 이장은 여간 대견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럼 그 부인들 사이에서는 남북통일이 된 셈이네요.”

이들 여성들은 남성과 여성, 남과 북이라는 이원적 세계의 상극적 경쟁관계를 극복하고 상보적.상생적 협력 관계로 발전시켜내고 있다. ‘다름’이라는 이유로 자행되는 남성들과 사회의 차별적 성향은 한몰댁과 들몰댁 등 은내골 여성들의 여성적 원리(Femine Principle)에 의해 자연스레 극복되어진다. 그러므로 송기숙의 문학 세계에서 발현되는 ‘여성성’은 협소한 의미의 것이 아닌, 새로이 재발견된 인간성을 구현하며 유토피아적 대안 세계를 그려내는 포용적인 여성성인 것이다. 여성들의 모습은 여성의 생태적 원리의 실현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간 여성만의 본성이라 불려진 직관.모성.보육 등에 머무는 소극적 모습이 아닌, 이를 포함한 생명력.다양성.역동성.순환성을 적극 실현하는 양상인 것이다.

  1. 대안적 양성성의 사사적 구현

「어머니의 깃발」의 어머니의 삶에서 드러나듯 권력 집단이 자신들의 안존을 위해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이러한 폭력은, “은내골 기행“에서의 민청학련 사건뿐만 아니라, “오월의 미소“에서의 광주 민중 항쟁,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은 역사에 반복적으로 표출된다. 권력은 자신의 손에서 빠져가려는 권력을 폭력 수단으로 필사적으로 만회하려는 불가능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폭력을 사용하는 권력은 이미 권력이 아니며, 아무런 정당성도 없음을 역설적이게도 증명해주고 만다. 작가 송기숙은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 집단이 자행했던 폭력적 역사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성들이 겪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통해, 일상성의 허구를 벗겨내고 나아가 왜곡된 역사의 허구를 바로 잡으려한다.

해방 이후 한국 전쟁, 냉전 체제의 고착 그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굴절은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의 가장 내면에서 우리를 지배해 온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는 뒤틀린 역사의 모습은 이제 현실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기에 일상에서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작가는 이같은 역사의 폭력성을 여성성의 승화를 통해 화해와 포용으로 감싸안으려고 시도한다. 이는 여성들의 세계에 의한 무조건적인 화해와 포용의 세계가 아니라, 잘못된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징벌과 정립을 통해 분단 현실과 민중들의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함이다. 여성 민중들의 모습을 통해 잘못된 역사의 징벌과 역사공동체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치까지 제시하여 이 시대에도 여전히 진행중인 역사의 뒤틀림과 폭력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대안으로 송기숙이 그의 소설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대안적 양성성의 구현이다. 대안적 양성성은 일차적으로 남근 중심적 체계를 해체함으로써 가능해지는데, 그의 소설은 남근 중심적 체계를 규제하는 담론을 언제나 넘어서 있다. 남근 중심적 체계를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민족과 민중의 삶에 드리운 역사의 질곡을 넘어뜨리는 것과 같은 맥락임이 그의 소설에서 강하게 토로되고 있다. 역사적 질곡을 생성하고 확장시킨 근원을 탐색하는 작업은 고통스런 여성들의 삶의 뿌리를 탐사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질곡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이 여성들의 삶에 드리워진 구조적 폭력을 해체하는 것이기에, 송기숙 소설의 심층은 남근 중심적 체계와 담론을 해체하는 것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송기숙 소설은 남성 작가의 글쓰기에서 보기 드물게 대안적 양성성을 구현해 내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인격적 요구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성적 욕망의 대상, 즉 욕구의 대상으로서의 여성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송기숙 소설에서는 욕망의 결핍과 충족이 길항하는 성적 긴장의 서사 구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글쓰기는 다름 아닌 안과 사이(in-between)에서 작용하고 있으며,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동일자와 타자의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며, 죽음의 작용을 해체하는 것이다. 즉 그의 소설은 남성과 여성이 갈등과 투쟁, 혹은 추방과 죽음의 형태의 연속에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체에서 다른 주체로의 끊임없는 교환 과정에 의해 무한한 역동성의 서사가 구현되는 것이다.

그 주체의 교환 과정이 “은내골 기행“, “오월의 미소“, 「어머니의 깃발」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들에는 남성들에 의해 유발된 갈등과 투쟁이 서사의 긴장을 추동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서사적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은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로 교체되어 이루어진다. 서사를 끌어가는 주체들이 처음에는 남성으로 제시되지만 긴장과 갈등을 해소하고 궁극적 주제를 구현해내는 인물들은 바로 여성들인 것이다.

“은내골 기행“에서는 전직 사진 기자 명호가 등장하여 유신 시절 독재 권력의 폭력성과 그 폭력의 역사적 연속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폭력의 역사를 해체하고 쇄신해나갈 수 있는 징후를 보여주는 인물은 명호보다도 선경 어머니와 함몰댁, 그리고 들몰댁이다. 그들은 역사적 폭력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그런 이유로 역사에 내재하는 남성들의 폭력성을 끌어안고 포용한다.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민중적 삶의 이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주제는 양면성을 갖는다. 즉 “은내골 기행“은 남성들에 의해 자행된 역사적 질곡과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라는 표면적 주제와 여성들에 의해 포용된 폭력성과 공동체적 이상의 구현이라는 이면적 주제를 동시에 구현해내고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오월의 미소“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5.18 광주 민중 항쟁의 역사적 해결과 응징을 시도하는 정찬우와 유용찬, 그리고 가해자였던 공수단원 김성보와 차관호 등의 표면적 갈등이 제시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 광주 항쟁의 피해 당사자였던 미선과 영선 자매와 공수부대원 김성보의 어머니인 고성댁의 화해가 이 작품의 서사를 긴밀하게 구조화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화 세력과 독재 세력의 갈등과 독재 세력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라는 표면의 서사적 긴장과 더불어, 영혼 결혼식이라는 제의를 통해 여성들 주체적으로 그 긴장을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화해의 모색이라는 이면적 주제를 동시에 읽어내야만 이 작품을 올곧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송기숙의 소설들은 갈등과 투쟁, 죽음이라는 남성들에 의한 서사를 주체의 교환 과정을 통해, 여성들이 주체로 나서서 새로운 역사를 모색하는 역동적 서사로 구현해내고 있다. 이는 시대에 흐름에 따른 무조건적인 화해로 귀결되는 역사 지향이 아니라 남성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역사의 폭력성에 대한 반성을 수반한다. 동시에 그것은 남성성의 극복에 의한 여성성의 부각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각각의 성을 인정하는 대안적 양성성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

  1. 송기숙 소설의 새로운 지평

송기숙은 그의 소설에서 권력 집단이 자신들의 안존을 위해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폭력성을 파헤친다. 그의 작품속에서는 친일파들의 만행, 6.25의 상흔, 70년대 민청학련 사건뿐만 아니라, 광주 민중 항쟁 등,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이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표출된다. 폭력을 사용하는 권력을 통해 그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외세의 침탈로부터 비롯하는 분단된 민족의 현실이며, 그로 인해 개인, 특히 이 사회의 하위체인 여성들의 삶과 역사가 뒤틀리고 굴절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폭력적 역사의 반복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순결한 여성 개인들이 힘없이 스러져가며 낙원 상실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민중 공동체속의 여성성이다. 이 여성적 세계란 선구적이지도 지식인적이지도 않은 민간 신앙아래 하나로 이어지는 여성적 계보의 공동체이며, 평범하지만 주체적인 여성 민중들의 자매애로 결집된 공동체의 모습일 수 있다. ‘도깨비굿’ ‘씻김굿’이나 ‘미륵’에 깃든 정신적 유대감을 공유한 채 민간 신앙의 복원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려는 순박한 여성들의 모습에서 작가의 공동체에 대한 강한 열망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작가의 의식이 여성성의 승화를 통한 화해와 포용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고 하여, 무조건적인 포용의 여성성에 대한 찬미는 아니다. 여성들의 세계에 의한 무조건적인 화해와 포용의 세계는 ‘잘못된 현실은 또 잘못된 미래를 낳는다’라는 관점에서 철저하게 거부된다. 잘못된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징벌과 제대로 된 정립된 새로운 역사 의식을 통해 분단 현실과 민중들의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함이 그의 소설에는 분명히 제시된다.

이러한 여성성의 승화는 남성적 질서와 담론에 대한 해체에 도달하는 길이 된다. 성적 차이를 넘어서서 양성성을 획득한 남성과 여성들에 의해 진정한 변혁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송기숙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 대안적 양성성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끊임없는 주체와 역할의 변화를 통해 역사와 운동의 역동성이 창출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소설들은 대안적 양성성의 구현을 통해 표면적 주제를 넘어선 이면의 주제가 궁극의 주제로 귀결되고 있다. 작가는 여성 민중들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뒤틀림과 허무적인 폭력성을 극복하고, 민중의식을 발현시켜 역사공동체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치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면적 독해를 통해 송기숙의 소설들을 새롭게 읽고 해석하였다. 이는 그간 농민 문학, 민중 문학 등 단선적으로만 이해되던 그의 소설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확보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이같은 과정은 송기숙의 소설에 대한 다층적 독서의 필요성에서 기인된 것이며, 그것을 통해 그의 문학 세계는 그간 이야기하고 있으나 이야기되지 않았던 새로운 지평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