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사회 사적 영역의 여성문제

80년대 후반 “the personal is political”이란 구호를 내 걸고 사적 영역, 즉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문제를 공식 제기한 것은 급진주의 여성해방론자들이었다.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문제 즉 법․제도의 평등이나, 경제적 평등을 여성들이 성취한다고 하더라도 가정에서 일어나는 앞에서 열거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애초에 남성들을 배제한 여성공동체를 지향한 것이었다. 사실 公․私 영역이 첨예하게 구분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진입하면서 가정은 공권력이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아내구타는 법이 관여할 수 없게된 것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가정과 일터의 분리로 일부(브르주아) 여성은 가정에 안주하고 일터에 나가서 부양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남성 가장으로 역할이 이분화된다. 초기 자본주의 시기에 가장은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하여 냉엄하고 가혹한 바깥 자유경쟁체제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10여시간 이상 일을 하였다. 일을 마친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가장이 귀가하였을 때 가정은 그의 피로를 풀어주는 정서적이 보금자리요, 사랑의 안식처요, 영혼의 쉼터로서 기능을 담당하며, 가정을 지키는 아내는 남편의 위안자, 위로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하였다. 따라서 가정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사적인 공간으로서 사생활(privacy)은 절대 보호받아야만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근대 이후에 아내구타 문제는 공권력이 개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 전통사회에서도 아내구타는 있었다. 그러나 구타가 합법적인 것이 아니라 이혼의 사유가 되었으며,49)부부싸움도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었다. 예컨대 퇴계 이황이 지은 <예안향약>에 남편과 아내가 서로 욕설과 때리며 부부싸움하는 경우에는 마을 밖으로 강제 퇴거시키는 중한 벌칙을 부과한 것이 비근한 본보기라 하겠다. 오히려 때려서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은 (시)어머니에게 있었다. 매를 들어서 가르치는 교육은 어머니의 몫이었기에, 아들과 며느리가 잘못하면 매를 들라고 『소학』「母儀」장에 기록되었음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이와 비교하여 부부중심의 핵가족 서양사회에서 매를 들어서 가르치는 권한은 남편에게 있었음도 이미 논증한 바 있다. 이 점에서 동․서양 가부장제의 성격이 다름을 엿 볼수 있다.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로 이행된 현대사회에서 한국 며느리들의 인권은 놀랄만큼 향상되었고 오히려 시어머니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저하되었다. 시어머니의 며느리 구타가 유책 이혼사유가 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사회에서 아내구타는 교육과 법적․제도적 장치로 해결하는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을 보게 되었던 바 이는 전통사회 <향약>과 같은 법정신으로 되돌아감을 깨우쳐 준다. 그러나 연령의 위계질서에서 오는 시어머니의 아들․며느리에 대한 구타는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가사결정권의 문제는 앞에서도 자세하게 언급한 만큼 지루한 설명은 생략할 것이다. 유교 양반문화의 내외법에 의해서 아내는 비록 남성의 외업인 학문과 정치참여(出仕)에서 배제되었지만, 내업 주장자로서 내업에 관한한 독자적인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이 내외법의 유습으로 현대 한국 전업주부들의 가사결정 참여도가 미국의 디트로이트 시의 주부들보다 더 높게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비록 내외법이 현대 여성들의 공적 경제활동 참여 동기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지만(이 점은 성별분업에서 논의를 진전시키겠다.) 유교문화가 여성의 사적 영역을 확실하게 보장해 준 것도 또한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