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개념적 실재론 근본주의 고찰

근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생산의 ‘심층 구조’는 사회적 활동의 아무런 도움 없이도 존재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부여받는다. 이는 부조리한 결과를 낳게 한다. 이는 인과성이 심층에서 표층으로, 단지 한가지 길로만 관철되는 불가능한 종류의 ‘심층-실재론’을 만들어 낸다. 이는 인과적 관계들이 스스로 그리고 순수한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원론적 세계인 것이다(Collier 1989, p.63)

이러한 세계의 불가능성은 근본주의의 가치이론에 관한 문제에서 뚜렷하다. 근본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가치이론은 사회 연구의 중추, 즉 필수불가결한 출발점이다. 이는 자본주의 계급관계의 역사적 특수성이 가치 형태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생산은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의 기반 위에서 상품들의 교환을 통해 일어난다. 어떤 해석들은 가치 형태 분석의 사회주의적 연구의 중심성을 강조하며(예를 들어 Elson 1979, Arthur 1979), 또 어떤 이들은 가치의 양적 차원에 대한 설명을 강조한다(예를 들어 Freeman 1988 을 보라).

그러나 비판적 실재론의 조망에서 보자면 시장은, 다른 어떤 구체적인 사회 제도들 처럼, 사회의 ‘근본적인 자본주의 구조’ 뿐만 아니라 다른 구조들도 생산하거나 변형하는 ‘수렴적’ 메커니즘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모든 구체적인 사회에서, 무엇이 생산되는가 또는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는가 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단지 잉여가치 생산의 견지에서만 설명될 수는 없다. 경험적(구체적) 시장들은 민족국가의 법적 자원들, 그리고 부르조아 경제학에서 미리 주어진 ‘기호’나 ‘선호’로 간주되는 넓은 범위의 생물학적, 문화적, 사회심리학적 영향들에 의존한다. 이러한 것들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분할 뿐만 아니라, 여타의 사회적 역할들의–순환에서, 소비에서, 법적 지위의 측면에서, 영역적으로는 재생산 등에서–복잡한 재분배 역시 수분한다. 잉여가치의 생산과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의 재생산은 시장의 어떤 내재적 동학 이상의 것에 달려있다. 역으로, 시장은 자본주의의 산물 이상의 것이다–이는 자본주의적인 ‘외재적 필요성으로서의 내부적 경향’(Marx 1867, p.414)에 의해서만 구조화되지 않는다–또한 이는 자본주의 이상의 것을 재생산하는 수단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시장에서의 경쟁은 “외재적인 강제적 법칙의 모습으로, 모든 개별 자본가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Marx 1867, p.225)을 드러낸다는 맑스의 주장을 재맥락화해야만 한다. 맑스의 주장은 경험적 시장들을 설명하는데는 사용될 수 없는 특정한 추상 속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구체적 분석에서 어떤 상품의 가치(예컨대, 노동의 재생산 비용)는 사회 관계의 특수한 조합을 조건으로 해야만 한다. 따라서 실제 세계의 상품의 가격은 자본주의적 착취 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해결되지 않은 투쟁들(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여타의 체계적 차별의 형태들)의 전 범위를 ‘암호화(encode)’한다. 이를 맑스는 생계임금에서의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요소들’에 대한 언급 속에서, 그리고 ꡔ자본ꡕ 1권의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우연성들의 구체적 역사에 대한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여타 사회관계에서의 변화는 노동의 가치를 변화시킬 것이며, 가치와 가격의 관계 전체를 바꾸어낼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의 패배는 다이아몬드와 주택의 가치와 가격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남성과 여성에 의한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으로의 움직임은 상대적 가격과 노동력의 가치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는 노동가치이론에 대한 근본주의적 해석에, 그것이 어떤 시간의 가격의 배열과 가치의 패턴(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인 한, 문제를 일으킨다. Shaik가 지적하듯이, “가치법칙은 그 안에 가격 현상의 구조에 대한 이론을, 그 가장 구체적인 결정들에게 까지, 포함해야만 한다”(Shaik 1984, p.47, Freeman 1984도 보라). 문제는 가치이론이 경제학이 특수한 사회적 변형의 정치경제학에 길을 터주어야 하는, 즉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개념에 길을 터주어야 하는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

가치이론가들은 여타의 ‘구체적 결정들’을 생산의 효과로서 배타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복잡한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Freeman은 구체를 구성하는 연관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임대투쟁에서 전쟁에 이르는 범위의 투쟁들을 고려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모든 관계들은 “공통의 토대 위에 놓여진다; 그것은 가치의 형태로, 착취의 전리품을 재분배하기 위한 싸움이다”(p.250)라고 주장한다. 환원주의는 이 ‘가치의 형태’라는 낱말들에 있다. 그러한 투쟁들은 현실의 수준에서 일어나며, 그만큼 이들은 가치 범주가 아니라 임금 및 가격과 같은 구체적 범주와 관련된다. 이들 범주들은 매개된 가치들이지만, 이들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체계적 힘들은 단지 수동적 매개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시장은 생산의 자본주의적 성격 이상의 것의 표층적 표현이다. 이 문제는 신고전파적 ceteris paribus[다른 조건이 같다면] 모델 같은 것을 구성하려는 수량적 맑시즘으로는, 유용할지는 몰라도, 회피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전형 문제’가 근본주의에게 실제로 문제가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즉, 추상에서 구체로의 이행에 다리를 놓을 수 없으며 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인 사회적 조건을 유지해야만 하는 자본에게 있어서는 실제적 문제이다. 그러나 자본이 역사적으로 도달한 해결책은 어떤 자동적인 경제적 논리에 의해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것은 동시에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지리적인 해결책이었다. 그 겉보기의 주장과는 반대로, 가치이론은 사고 속에서 생산의 실제 변증법에 부응하지 않는다. 여기서 근본주의의 문제들은 봉합되고 있다.13)

근본주의는 이론적으로 불완전하며, 낭만주의와 결합하지 않고는 실천으로 전화될 수 없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정확성을 가지고 분석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면, 그 대리물은 너무 고임금을 받지 않거나, 파업을 하고 있는 어떤 가시적인 피고용인 집단에서 발견되어야만 할 것이다.